달랏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매연 섞인 엔진 소리만큼은 귓가를 아주 따갑게 때렸다. 멀리서부터 굉음을 내며 언덕을 쏘아 오르는 오토바이들의 배기음 때문이었다.
경사가 도대체 얼마나 심하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마주한 건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가파르고 살벌한, 말 그대로 하늘과 맞닿을 듯한 급경사 돌계단길이었다. 바로 베트남 달랏의 명물 언덕, 독냐보(Dốc Nhà Bò)다.

솔직히 처음엔 왜 굳이 남들 오토바이 타고 오르내리는 골목길을 구경하러 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귀찮기도 했다. 웬걸. 막상 언덕 아래에 서서 브레이크를 잡으며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이곳은 달랏 시내 중심부인 야시장 쪽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져 있다. 구글 지도 상으로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이지 않지만, 달랏 특유의 고저 차가 심한 지형 때문에 걸어서 가는 건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체력이 깎인다. 가장 합리적인 이동 수단은 단연 그랩(Grab)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출발하면 그랩 요금은 부담 없는 편이다. 오토바이 그랩을 타면 바람을 맞으며 훨씬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고, 4인 기준 일반 택시를 타도 쾌적하게 언덕 입구 근처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다만 언덕 입구 직전 도로는 매우 좁고 복잡하다. 기사님에 따라 급경사 시작점 조금 아래쪽 안전한 공터에 내려주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게 걷기에도 편하고 언덕 전체를 조망하기에 낫다.
언덕 아래쪽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좁고 가파른 길 위로 그랩 배달 기사님부터 현지 주민, 렌트 오토바이를 탄 여행자들까지 뒤엉켜 있었다.

특히 언덕 위쪽에는 아찔한 다운힐을 준비하며 출발 타이밍을 재는 오토바이들이 무리 지어 몰려 있었다. 브레이크를 꽉 잡은 채 조심조심 내려오는 모습은 위험천만해 보이면서도 이상한 몰입감을 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커플의 모습이었다. 남자친구가 오토바이 핸들을 꽉 잡고 업힐을 시도하려는데, 뒤에 타려던 여자분은 경사를 보고 겁을 먹었는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결국 여자분은 오토바이에 타는 것을 포기하고 본인의 두 발로 돌계단을 벅벅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오토바이가 끙끙대며 오르는 속도와 여자분이 뚜벅뚜벅 걷는 속도가 비슷해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현장의 날 것 그대로인 인간적인 변수였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영화 배경지이자 묘한 감성을 주는 골목 풍경 때문이다. 단순히 밋밋한 오르막길이 아니다. 길 왼쪽으로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층층이 깎아 놓은 거친 돌계단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오토바이가 다니는 비탈길이 나뉘어 있다.

가장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구도는 언덕 중간쯤 돌계단 쪽에 멈춰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는 각도다. 이때 촌스러운 오렌지색 지붕과 컬러풀한 현지 집들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달랏 특유의 빈티지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조금 더 색다른 컷을 원한다면 언덕 맨 위쪽까지 올라가야 한다. 정상 부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좁은 골목길 사이로 저 멀리 달랏 시내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층경처럼 겹쳐 보이는 장관을 담을 수 있다. 맑은 날에는 구름과 골목길이 한 프레임에 잡힌다.

사진이 아무리 예쁘게 나온다고 해도 이곳은 관광용 세트장이 아니다. 주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실제 생활 도로나 다름없다.
인생샷을 남기겠다고 오토바이가 오르내리는 도로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거나 삼각대를 설치하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실제로 클락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사가 심해 오토바이 운전자들도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 사진 촬영은 반드시 왼쪽 돌계단 안전지대에서만 해야 한다.
또한 비가 오는 날이나 비가 내린 직후에는 방문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돌계단 사이에 이끼가 끼어 있고 바닥 자체가 매우 미끄럽다. 오토바이들도 미끄러져 전도되는 사고가 잦은 곳이니, 맑고 건조한 날씨에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방문하길 권한다.
솔직히 대단한 볼거리가 있거나 쾌적한 휴식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달랏 시민들의 치열하고 아찔한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가장 생생한 배기음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임은 틀림없다. 언덕을 걸어 오르던 그 여자분의 뒷모습이 떠올라 내려오는 길 내내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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